나루토 - 하타케 카카시
월간 드림 12월호
- 근사한 저녁 식사
- 손가락이 얼어붙을 즈음
- 하얀 눈 속의 연인
[나루토] 하타케 카카시 드림
Written by. 까메오양
소복하게 쌓인 눈이 달빛을 비추며 반짝인다. 겨울의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를 들이마시니 금방 숨이 찬다. 코끝도 시큰하다. 기실 손이며 발이며 시리지 않은 곳이 없다. 두 손을 비비며 어깨를 움츠렸다. 짐승들도 몸을 움츠릴 만큼 추은 이 밤에 갓 하급 닌자가 된 내가 홀로 눈밭을 헤치며 사유지의 숲을 수색하는 이유는 모두 임무를 하달받은 탓에 있다. 임무라고는 하지만 결국 아카데미의 졸업을 기념하며 일족 안에서 행해지는 서바이벌 시험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 연도에 아카데미를 졸업한 나를 위해 당주님을 선두로 일족의 어른들이 모였다.
'시간 내에 숨겨둔 두루마리를 찾아내는 게 네 임무다.'
그리 말하는 당주님 뒤에서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날 바라보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걱정이 많은 어머니는 내가 서바이벌 임무에 실패하는 부로 닌자를 관두라며 펄펄 뛰실 게 뻔했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 순간 배에서 꼬르륵 우렁찬 소리가 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으니 일단 뭐라도 좀 먹고 해도 되겠지."
그러고 보면 이 숲에 들어온 지도 벌써 몇 시간이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무기와 함께 몰래 챙겨왔던 군것질거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무와 바위로 둘러쌓여 있어 바람을 피할 만한 곳을 찾자마자 몸을 숨겼다. 몸을 녹이자고 불을 피웠다간 가상의 적으로 위장한 일족의 닌자에게 들킬 수 있으니 이게 최선책이었다. 빨리 먹고 다시 두루마리를 찾아 나설 생각으로 가방을 여는데 근처에서 빠르게 접근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엔 동물인가 했는데 그 뒤로 훈련받은 닌자의 기척이 따라붙고 있다. 초콜릿대신 수리검을 손에 쥐고 자세를 잡았다.
기다리고 있자니 찬 바람에 손가락이 얼어붙을 즈음, 내 뒤의 바위를 디딘 토끼가 뛰어오르는 동시에 수리검이 날아와 박혔다. 토끼는 내 앞으로 고꾸라졌다. 가죽이며 눈이며 하얗던 것들이 스며 나오는 피에 젖어 들어간다. 바들바들 떨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숨을 죽였다. 머잖아 바위 위로 닌자의 기척이 다가왔다. 나는 저 닌자가 아까의 토끼처럼 바위를 디디고 뛰어오르는 순간에 맞춰 수리검을 던질 생각이었다. 닌자가 아니라, 동네 꼬마라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다. 바위 위에서 튀어나온 작은 몸집에 놀라 급하게 수리검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신원을 확보할 필요는 있어, 대신 발목을 잡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을 법한 아이는 나에게 발목을 잡힌 채로 대롱대롱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잡힌 아이도 놀란 모양인지 검은색 복면으로 덮어 코까지 다 가린 얼굴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 떠져 있다. 동네를 오가며 몇 번 본 적이 있는얼굴이다. 한때 '영웅'이었던 하타케 사쿠모 씨의 아들이라던 하타케카카시였다. 그러고 보니 얘도 천재라고 자자했더랬지. 내가 닌자로 착각할 만도 하다.
"여기 우리 일족의 사유지인데…."
천천히 내려주며 입을 열었다. 카카시는 내가 발을 놓자 땅을 짚고 재주넘기를 해 바로 섰다.
"혹시 어른들은 못 봤니?"
"아무도 없었어요. 토끼를 쫓아 왔는데 사유지인 줄 몰랐어요."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카카시에게 손사래를 쳤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뭐 큰 잘못이라고. 그런데 내가 서바이벌 임무 중이었거든. 이럴 때는 길을 잃었다고 해도 어른들이 의심할 테니까 나랑 같이 나가는 게 좋겠다."
시험의 연장선으로 기습을 시도한 닌자인 줄 알았는데 동네 아이였다니,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자 다시 배에서 꼬르륵, 우렁찬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토끼를 챙겨와 묻은 눈을 털던 카카시가 나를 바라봤다.
"이 토끼라도 먹을래요?"
"그래도 될까?"
대신 손질은 내가 하기로 했다. 비록 직접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름 이론은 빠삭했다. 아버지와 사냥하러 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경험도 있다. 수리검을 들고 토끼의 배로 가져다 댄 참이었다. 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카카시가 나를 말렸다.
"그냥 제가 할게요."
어찌나 단호하던지, 나는 카카시에게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작고 어린 손이 조물거리는데 지나간 자리는 깔끔하게 해체되고 있다. 카카시의 손재주는 대단했다. 해체를 끝내고 나서는 버섯이며 풀잎 몇 개를 찾아와서 같이 꺾어온 나뭇가지로 만든 꼬챙이에 끼우더니 곧 그럴듯한 토끼 구이를 만들어냈다. 그 옆에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불을 피우는 게 전부였다.
비록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숲속에서 서바이벌 중이라 텐트도 없이 추위에 덜덜 떨며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지만, 나 혼자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던 근사한 저녁 식사였다.
보호를 자처했지만 어쩐지 카카시에게 도움만 받아버린 터라 겸연쩍을 차에 가방에 있을 군것질거리가 떠올랐다.
"후식이라도 먹을래?"
초콜렛이랑 사탕 두어개 뿐이지만 없는 것보단야 낫다.
"그러고 보니 서바이벌 임무라는 게 뭐예요?"
초콜릿을 오물거리며 카카시가 물었다.
"말 그대로 서바이벌이야. 일족 안에서 하급 닌자를 상대로 생존과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건데, 제한 시간 내에 숨겨져 있는 두루마리를 찾아낸 다음 그 안의 소환진으로 일족의 어른을 불러내면 끝나."
"두루마리요?"
"응, 그런데 어지간히도 꼭꼭 숨겨놓은 모양인지, 산의 절반은 뒤진 것 같은데도 안 보이네."
"혹시 그 두루마리 초록색 천을 덧댔나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일족의 문장이 찍혀있을 거야."
"제가 토끼를 쫓다가 이런 두루마리를 주웠거든요."
카카시가 내민 두루마리는 일족의 문장이 찍힌 채로 봉해져 있었다. 내가 찾아 헤매던 그 두루마리가 맞다.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니.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가서 그랬구나.'
그 이후는 순조로웠다. 두루마리의 소환술을 통해 소환된 사람은 당주님이셨다. 카카시의 존재에 대해는 미리 입을 맞춘 대로 사정을 설명했고,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닌자라며 크게 칭찬을 받았다.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는 어른들을 따라 숲을 나서던 카카시가 돌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기, 도와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꼭 보답할게요."
사정을 모르는 어른들의 눈에야 은혜를 잊지 않는 기특한 아이로 보이겠지만, 사실 해준 것도 없었던 나는 너스레를 떠는 카카시의 모습에 웃음만 나올 따름이었다.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첫눈을 보자니 옛날 생각이 나지 않느냐며 운을 띄웠던 카카시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때 말한 보답을 못 했네요."
예나 지금이나 복면으로 꽁꽁 감싼 탓에 겨우 보이는 두 눈으로 생글생글 눈웃음을 친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요?"